안녕하세요. 져니왕입니다.
폭염에 쓰러진 노동자들, 그들은 왜 매년 같은 방식으로 죽어가는걸까요?
2025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또다시 기록을 경신 중입니다.
기온 35도를 넘는 날이 수일째 계속되고, 도심은 마치 거대한 찜통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실내로 숨고, 에어컨을 켜고, 휴가를 계획합니다.
하지만 이런 더위 속에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설 현장, 도로 위, 물류센터, 쓰레기 수거 차량…
우리가 외면하는 바로 그곳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땀과 생명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매년 여름 그들 중 누군가는 ‘더위에 죽는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폭염은 자연재해일지 몰라도, 그 속의 죽음은 사회적 재난입니다.
더 이상 "운 나빴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그 어떤 위로도, 변명도 될 수 없습니다.
기온 36도…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작년 여름,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58세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날 기온은 36도, 작업현장은 아스팔트 위의 철근 바닥. 누군가는 “쉬었다 가시죠”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일정이 너무 촉박해요”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사례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온열질환자는 2,100명, 이 중 다수는 야외에서 일하던 노동자였습니다.
택배 기사, 환경미화원, 조경 작업자, 배관공… 이름은 달라도 사인은 같습니다. “폭염 속 과로”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들 중 상당수는 산재로 인정조차 받지 못합니다.
“작업 중이 아니라”, “개인 건강 문제로”, “지침 위반으로”라는 이유로 유족은 책임을 전가당하고,
노동자의 죽음은 그냥 한 줄 뉴스로 사라집니다.
‘그늘·물·휴식’ 지침? 실제론 종이조각입니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여름, 폭염 대응을 위한 ‘3대 수칙’을 발표합니다.
그늘, 물, 휴식.
기온이 33도 이상이면 실외작업 중단, 30분마다 10분 이상 휴식, 시원한 물 제공 등…듣기엔 그럴듯한 지침입니다.
하지만 현장은 다릅니다.
🔹 휴식하라면서 휴게공간은 장비 창고
🔹 물은 셀프로 준비하라
🔹 쉬겠다고 말하면 눈치 주고, "빠져"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특히 일용직,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쉴 권리”를 주장하면 다음 날부터 현장에 부르지 않거나, 계약을 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지침은 있지만 강제력은 없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렇게 제도는 현실을 보호하지 못한 채, 매년 반복되는 참사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폭염 속 노동은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살인
폭염은 기후의 문제지만, 그 속에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건 인간의 시스템입니다.
기업은 말합니다. “장비는 충분히 지급했고, 노동자들이 지침을 안 지킨 거다.”
현장은 말합니다. “날짜 맞추려면 무리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말합니다. “우린 지침을 제공했다.”
결국 이 구조 안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그 사이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일정 앞에선 생명이 밀리고, 비용 앞에선 안전이 지워지는 현실.
이건 구조적 방임이자, 사실상 ‘합법적 살인’입니다.
폭염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죽음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재난입니다.
단지 운이 나빠서 쓰러진 게 아닙니다. 막을 수 있었는데, 준비하지 않았고, 책임지지 않았고, 무시했기 때문에 생긴 참사입니다.
사전 예방, 적절한 휴식의 보장, 강제력 있는 법적 규제만 있었더라도, 매년 여름 반복되는 이 끔찍한 뉴스는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누군가는 죽는다”는 공식이 너무 오래, 너무 익숙하게 유지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익숙하다고 해서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폭염 속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개인의 체력이나 부주의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일정을 맞추려 쉬지 못하게 한 건 누구였나요? 폭염 경보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은 결정은 누구의 몫이었나요?
작업복 하나, 물 한 병조차 제공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내몬 건 누구였나요?
이건 단지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건 구조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실패이며, 우리 사회 전체가 외면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또 같은 이유로 현장에서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더 이상 ‘누군가 죽었다’는 뉴스를 무표정하게 넘길 것이 아니라,
“왜 죽었는가, 어떻게 막을 수 있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정부는 제도적 강제력을 마련해야 하고, 기업은 생명 앞에 비용 타령을 멈춰야 하며, 우리 시민들은 관심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의 인식 하나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작아 보일지 몰라도, 그런 변화의 시작이 모여 다음 여름,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진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뜨거운 햇볕보다 더 무서운 건, 차가운 방관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